
영유아검진을 할 때마다 유심히 보는 부분이 바로 아이의 키입니다. 아이가 또래보다 키가 작은지 큰지 꼭 살펴보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잘 성장하고 있다는 지표가 키를 통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가 또래보다 많이 작다면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합니다. 저신장에는 그냥 두어도 되는 경우와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따로 있고, 그 차이를 몰라 놓쳐서는 안 될 타이밍을 그냥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작은 건 유전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저신장증(低身長症)이란 같은 나이, 같은 성별 또래 100명 중 키가 작은 쪽에서 세 번째 이내 ( 또래 100명 중 하위 3% 이하(3백분위수 이하) )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또래 100명을 한 줄로 세웠을 때 아래에서 세 번째 안에 들어간다면 저신장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저신장이라고 해서 전부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정상 변이 저신장입니다. 부모 키가 작아서 아이도 작은 가족성 저신장, 또는 또래보다 성장이 느리지만 나중에 따라잡는 체질성 성장 지연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체질성 성장 지연이란 성장과 사춘기 시기가 또래보다 늦게 찾아오는 경우를 뜻하는데, 치료 없이 기다려도 결국 정상 범위 키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병적 저신장입니다. 성장호르몬 결핍증, 갑상선기능저하증, 터너 증후군 같은 염색체 이상, 만성 신질환처럼 명확한 원인이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경과만 지켜보다가는 결정적인 치료 시기를 놓칩니다.
제가 가장 크게 깨달은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병원에서 키가 작아 방문하는 아이들 중 실제 저신장증 진단을 받는 경우는 전체의 10~30% 수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정상 범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막연히 "우리 아이가 작다"는 느낌만으로 걱정하기보다는 성장 속도를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키보다 더 중요한 건 성장 속도
제가 영유아검진을 받으면서 가장 놓치고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현재 키의 절댓값이 아니라 성장 속도입니다. 지금 키가 백분위 5%라도 성장 속도가 정상이라면 큰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백분위 20%라도 성장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면 반드시 검사가 필요합니다.
다음 상황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소아내분비과 전문의 상담을 권합니다.
- 또래보다 키가 눈에 띄게 작고, 성장 속도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
- 학령기 기준으로 1년에 4cm 이하 (정상적으로 성장기 아이는 연간 5~6cm 이상 자랍니다)
- 성장곡선이 점점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 사춘기 시기가 지나치게 빠르거나 늦다
병원에서는 성장곡선 확인 외에 골연령(bone age) 검사를 진행합니다. 골연령이란 손 X선 촬영을 통해 성장판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것으로, 실제 나이와 골연령의 차이를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클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성장호르몬 분비 자극 검사와 혈액검사를 더해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성장호르몬 결핍증은 성장호르몬 분비 자극 검사(GH stimulation test)로 확인합니다. 여기서 GH 분비 자극 검사란 약물로 성장호르몬 분비를 유도한 뒤 혈중 농도를 측정하는 검사로, 결핍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에 따르면 이 검사에서 성장호르몬 최고 농도가 10ng/mL 미만일 경우 결핍으로 판정합니다(출처: 대한소아내분비학회).
이 부분은 직접 병원에 가보기 전까지는 정말 모릅니다. 아이 키를 6개월마다 꼼꼼히 재서 기록해두지 않으면 성장 속도 자체를 파악할 방법이 없거든요.
성장호르몬 치료, 언제 어떻게 시작하는 건가요
성장호르몬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부모 입장에서는 당장 "부작용은 없나", "언제까지 맞아야 하나" 같은 질문이 쏟아집니다. 저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분명 그랬을 겁니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성장판이 열려 있는 동안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성장판(epiphyseal plate)이란 뼈 끝에 있는 연골 조직으로, 여기서 뼈가 자라면서 키가 커집니다. 남아의 경우 골연령 16세, 여아는 골연령 15세가 되면 성장판이 닫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의미 있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치료 방법은 보통 주 6~7회 자가 주사이며, 최근에는 주 1회 투여하는 제형도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확인된 경우 치료 효과는 상당히 큰 편입니다. 치료하지 않았을 때보다 평균적으로 수 cm 이상의 키 증가 효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보험 적용 여부도 부모들이 많이 물어보는 부분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기준으로 성장호르몬 결핍증, 터너 증후군, 만성 신질환에 의한 성장 장애 등 일부 질환은 급여 적용을 받아 비용의 30%만 부담하면 됩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반면 검사 결과가 모두 정상인데도 키가 작은 특발성 저신장(idiopathic short stature)은 비급여 치료입니다. 특발성 저신장이란 뚜렷한 원인 없이 키가 작은 경우를 말하는데, 이 경우 치료 효과도 개인차가 크고 10명 중 6~7명에서만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한 가지 꼭 짚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요즘 성장 관련 영양제 광고가 정말 많은데, 제가 보기엔 과장된 내용이 상당합니다. 성분이 불분명한 제품을 먹다가 오히려 성조숙증이 유발되어 성장판이 일찍 닫히는 경우도 실제로 보고됩니다. 균형 잡힌 식사, 하루 30분 이상 운동, 8시간 이상 수면이 생활 속 성장 관리의 기본입니다. 종합 비타민 정도는 무방하지만, 그 이상의 영양제는 전문의와 상담 후 결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아이의 성장 걱정은 어느 부모나 갖고 있습니다. 다만 걱정을 막연하게 갖고 있는 것보다는 6개월마다 키와 체중을 직접 재서 기록해두고,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면 주저 없이 전문의를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한 접근입니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모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필요한 아이가 시기를 놓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금 아이의 성장 기록이 없다면 오늘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아이의 성장에 이상이 의심된다면 반드시 소아내분비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