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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 계획 세우다 보면 한 번씩 이런 상황이 생깁니다. 아이가 모래사장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갑자기 축 처져서 조용해지는 거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 순간의 당혹감이 어떤 건지 압니다. "그냥 덥나 보다"가 실은 꽤 위험한 신호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일사병과 열사병, 같아 보이지만 다릅니다

    일사병과 열사병은 둘 다 고온 환경에 오래 노출됐을 때 생기는 온열질환(heat illness)이라는 큰 틀에서는 같습니다. 온열질환이란 체온 조절 기능이 외부 열에 압도당했을 때 나타나는 일련의 질환군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 몸이라는 기계가 바깥 온도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입니다.

     

    차이는 체온이 얼마나 올라갔느냐, 그리고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왔느냐로 나뉩니다. 일사병은 체온이 37도에서 40도 미만 사이로 오르면서 두통, 구역, 어지러움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반면 열사병은 체온이 40도를 넘어서면서 의식 저하, 경련이 동반되는 훨씬 심각한 상황입니다. 열사병 단계가 되면 간, 콩팥, 뇌 같은 주요 장기에 실질적인 손상이 시작되고 사망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했는데, 어느 더운 여름날, 유모차에 선바이저를 달고 산책을 나갔는데도 아이 얼굴이 갑자기 새빨개지면서 몸에 땀이 범벅이 된 채 축 늘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쫑알쫑알 떠들던 아이가 갑자기 조용해지는 게 이상했는데, 보니까 이미 일사병 초기 증상이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한 건 옷을 느슨하게 풀고 최대한 빨리 시원한 실내로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열사병에서는 땀이 줄거나 멈추는 경우가 많지만, 땀이 난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땀 분비 자체가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의 명령을 받는데, 이 시스템이 완전히 고장 나버린 것입니다. 자율신경계란 체온, 심박수, 소화 같은 신체 기능을 무의식적으로 조절하는 신경계를 말합니다. 땀이 나야 할 상황에 오히려 피부가 말라가면서 갑자기 쓰러진다면 열사병을 강하게 의심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 질환이 더 위험한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 성인보다 체온 조절 능력이 미숙하고 땀 배출 기능이 덜 발달되어 있습니다.
    •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놀이에 집중하면 더위를 인지하지 못하고 임계점을 훌쩍 넘어버립니다.

    2024년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여름철 온열질환자 중 영유아와 고령자가 특히 취약 계층으로 분류되며, 온열질환으로 인한 응급실 내원 환자 수는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아이가 쓰러지기 전에 부모가 먼저 알아야 할 것들

    일사병에서 열사병으로 넘어가는 건 "조금 더 버티다가"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이게 제일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 스스로는 못 느끼거나 표현 못 하고, 주변 어른이 "좀 쉬자"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놓치는 거니까요.

    초기에 잡아야 할 신호는 다음과 같습니다.

    • 평소보다 유난히 처지거나 활동량이 급감할 때
    •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붉게 달아올랐을 때
    • 갑자기 짜증이 늘거나 보채는 행동이 증가할 때
    • 땀이 과도하게 나거나, 반대로 갑자기 땀이 멈출 때
    • 구역질을 호소하거나 식욕이 뚝 떨어졌을 때

    이 단계에서 빠르게 대응하면 열사병까지 진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반면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라고 방치하면 체온이 40도를 넘어서는 건 생각보다 빠릅니다.

    응급 대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즉시 시원한 곳(에어컨 실내 또는 그늘)으로 이동합니다.
    2. 옷을 느슨하게 풀거나 벗겨 체표 혈액순환을 도웁니다.
    3.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줍니다. 찬물은 피부 혈관을 수축시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4. 경구수액(oral rehydration solution)을 조금씩 자주 먹입니다. 경구수액이란 물과 전해질을 적절한 비율로 배합해 탈수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음료를 말합니다. 맹물보다 전해질이 함께 보충되어야 세포 수준에서의 수분 균형이 더 빨리 잡힙니다.
    5. 의식이 흐릿하거나 경련이 생기면 즉시 119에 신고합니다.

    부모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많이 흘렸으니 괜찮겠지"라는 판단입니다. 경험해보니 이건 꽤 위험한 생각입니다. 땀을 많이 흘렸다는 건 이미 체내 전해질과 수분이 상당히 빠져나간 상태라는 신호이지, 몸이 잘 버텼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처럼 큰 혈관이 지나는 부위를 집중적으로 식히면 체온을 더 빠르게 낮출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그냥 재우자"도 절대 금물입니다. 열사병이나 심각한 일사병 상태에서 잠이 드는 건 의식 수준이 낮아지는 것과 구분이 어렵습니다. 상태를 계속 확인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해열제(antipyretic)를 먹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건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해열제란 감염으로 뇌가 체온 설정값을 높였을 때 그 설정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약입니다. 온열질환은 뇌의 설정값이 변한 게 아니라 외부 열이 몸을 직접 달군 것이기 때문에 해열제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예방 측면에서는 기상청 홈페이지의 체감온도 지수를 확인하는 게 상당히 실용적입니다. 어린이, 노인, 야외 작업자 등 대상별로 위험 단계를 구분해서 안내해 주는데, 막상 기상청 앱에서는 이 정보가 잘 보이지 않아서 홈페이지를 직접 들어가야 합니다. 이 지수가 경고나 위험 단계로 나온 날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 사이 야외 활동을 최소화하는 게 현명합니다. 야외 활동을 꼭 해야 한다면 20~30분 활동 후 반드시 그늘이나 실내에서 휴식을 취하고, 외출 전부터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출처: 기상청).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모차 선바이저에 시원하게 입혔으니 괜찮겠거니 했는데, 아이 체온은 어른보다 훨씬 빠르게 오릅니다. "괜찮아 보인다"는 판단이 아니라 "지금 얼마나 됐지?"를 기준으로 쉬게 해주는 게 맞았습니다.

     

    이번 여름은 작년보다 더 덥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사병과 열사병은 잘 알고 있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이지만, 한 번 놓치면 빠르게 위험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 곁에 있는 어른이 먼저 알고 있어야 아이를 지킬 수 있습니다. 올여름 야외 활동 전에 이 내용을 한 번쯤 다시 떠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의심되면 반드시 의료 전문가에게 상담하세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ZDxMZYUnl0